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김운용닷컴

English


연재 자료실

> 데이터룸 > 연재 자료실

작성일 10.05.28 조회수 1204
파일첨부
제목
110. 내가 만난 사람 - 트루먼

[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110. 내가 만난 사람 - 트루먼

[중앙일보] 입력 2009.01.29 01:27 / 수정 2009.01.29 01:45

“대통령 시절 가장 어려웠던 일은 한국전쟁에 미군 파병 결심한 것”


1964년 트루먼 기념관에서 필자·트루먼·김종필(왼쪽부터). 김 전 총리는 6·3사태 이후 미국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군 시절에 이미 세 차례 미국 유학을 했을 정도로 미국과는 인연이 많다. 군, 외교관, 청와대 근무, IOC 위원, 국회의원을 거치면서 참 많은 미국인과 만났다. 그 중에는 전·현직 대통령들도 포함돼 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도 두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우리에게는 ‘트루먼 독트린’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1945년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여할 때 미국의 대통령이었고, 한국전쟁 당시 미군 파병을 결정한 대통령이다. 53년 대통령에서 물러난 그는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시에서 은퇴생활을 했다. 그곳에 그의 기념관이 있었고, 그는 매일 그리로 출근(?)했다.

내가 워싱턴에서 근무할 때인 64년 캔사스시의 ‘피플 투 피플 프로그램’으로 여러 대학과 고등학교에 한국을 알리는 연설을 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인디펜던스에 들러 트루먼 전 대통령을 만났다. 미국인치고는 키(168cm)가 작았다. 그러나 역사적인 인물을 직접 만났다는 사실에 흥분했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역시 “미국 대통령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결심이 바로 한국전에 미군을 파병할 때였다”고 토로한 것이었다. 두 차례 모두 그 말을 되풀이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는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계기로 만났다. 당시 내가 IOC 수석부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직접 대면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 친밀감과 관심을 보였고, 특히 한국 경제를 자세히 알고 싶어 했다.

개회식 당시 나는 본부석에서 클린턴의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클린턴이 개회 선언을 할 때 내가 TV 화면에 잡혔던 모양이다.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TV에서 나를 봤다며 주변에서 난리였다. TV 화면을 촬영한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다. 클린턴은 휴식시간 때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역시 미국 대통령이라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가까이에서 본 클린턴의 인상은 명랑하고 소탈한 호인이었다.

애틀랜타 올림픽 도중 올림픽광장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바람에 클린턴과 IOC 수뇌부가 새벽에도 비상전화를 하면서 논의했다. 클린턴은 테러에 대비해 국민방위군을 동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일단 선수촌을 봉쇄하고 경기를 중단하는 조치를 한 다음 사태 진행을 지켜봤다. 클린턴은 추가 테러 위험이 없다고 판단, 방위군을 동원하진 않았다. 나는 선수촌에 가서 각국 선수단장 회의를 열어 선수촌 봉쇄 조치를 풀었고, 경기는 예정대로 재개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똑똑하고 강단이 있는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개막식 참석 후 백악관에 돌아가서는 특별기를 보내 IOC 위원의 부인 전원을 백악관으로 초청, 오찬을 할 정도로 올림픽에 관심이 많았다.

일리노이주 출신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고, 힐러리가 국무장관이 됐으니 올해 IOC 총회에서 시카고가 2016년 올림픽을 유치하게 될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김운용
이전글 111. 내가 만난 사람-고르비
다음글 109. 내가 만난 사람-백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