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김운용닷컴

English


연재 자료실

> 데이터룸 > 연재 자료실

작성일 10.05.28 조회수 1049
파일첨부
제목
112. 내가 만난 사람-장쩌민

[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112. 내가 만난 사람-장쩌민

[중앙일보] 입력 2009.01.31 00:21 / 수정 2009.01.31 00:23

고향 상하이서 동아시아게임 개최
1993년부터 올림픽 유치 정지 작업


1996년 하얼빈 겨울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장쩌민 주석(右)과 나란히 서 있는 필자.


중국에는 작은 거인이 많다. 덩샤오핑도 그렇고, 장쩌민도 그렇다. 장쩌민 전 주석은 특유의 리더십으로 중국을 오늘날의 대국으로 만든 작은 거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장쩌민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다. 그때 당서기였던 장쩌민은 양상쿤 주석의 뒤에 앉아 있어서 별로 눈에 띄지는 않았다. 당시 중국은 한국과 국교관계를 맺지 않았고, 개방도 덜 되어 공산국가의 폐쇄적이고 딱딱한 분위기가 그대로 있었다.

도쿄 IOC 총회가 끝난 다음날 중국은 전세기를 보내 모든 IOC 위원을 베이징으로 초청했다. 그러나 옛날 비행장에 옛날 운동장, 그리고 사회인프라도 형편없었다. 베이징에 자동차가 5000대밖에 없어 한국이 250대를 기증했을 때다.

장쩌민을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그가 주석이 된 뒤인 93년 상하이에서 열린 제1회 동아시아게임이었다. 상하이 출신인 그는 동아시아게임을 고향에서 치르면서 2000년 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나와 한 시간 가량 독대한 자리에서 그는 차분하면서도 겸손하게 중국의 실정, 올림픽 개최를 위한 명분과 노력, 한·중 관계의 장래를 얘기하면서 중국이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동아시아게임도 베이징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한 정지 작업이었다. 중국은 아시안게임 말고는 국제경기를 치른 경험이 거의 없었다.

마침 상하이에 머무는 동안 서울올림픽에 관한 나의 저서 『위대한 올림픽』이 중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5명이 번역해 『盛大的漢城奧運會』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출판기념회에는 허진량 IOC 위원 등이 참석했다. 『위대한 올림픽』은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90년 일본에서도 사마란치 위원장, 다케다 IOC 위원, 시마 NHK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어판 출판기념회를 연 적이 있다.

장 주석을 또 만난 것은 96년 하얼빈 겨울아시안게임 때다. 이때는 내가 IOC 수석부위원장으로서 IOC를 대표하는 입장이라 장 주석은 나를 국빈으로 대접했다. 공항에는 레드카펫이 깔렸고, 군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개막식에 장 주석과 나란히 앉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은 통역 없이 영어로 했고, 가끔 한자를 쓰기도 했다. 장 주석은 한국인으로서 IOC 고위직까지 오른 것에 대해 경의를 표했고, 96년 겨울아시안게임을 하얼빈에 양보해준 것에 대해 감사했다.

2000년 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중국은 8년간 준비한 끝에 2001년 모스크바 총회에서 2008년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장 주석은 모스크바까지 와 나를 포함한 IOC 위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돌아갔다. 후진타오 주석의 진두지휘 아래 450억 달러를 투입해 훌륭한 경기장에서 잘 치른 베이징올림픽의 밑바탕은 장쩌민 주석이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개회식 주빈석에 앉아 있던 장쩌민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김운용
이전글 113. 내가 만난 사람-백낙준
다음글 111. 내가 만난 사람-고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