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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내가 만난 사람-백낙준

[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113. 내가 만난 사람-백낙준

[중앙일보] 입력 2009.02.02 01:08 / 수정 2009.02.02 01:22

연희대 총장 시절 영어 중요성 역설
외국 명사들 초청강연 때 직접 통역


필자(左)가 백낙준 박사(中)의 생신을 축하하고 있다.


 외교관의 꿈을 안고 1949년 연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을 때 총장이 용재(庸齋) 백낙준 박사였다. 이때 연희대는 전문부가 학부로 바뀌고, 아직 졸업생이 나오기 전이었다.

백 총장은 “너희는 앞으로 세계에 나가서 나라를 빛낼 사람이다. 우선 영어가 제일 필요하다. 영어가 안 되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 역설했다.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의 젊은 학도들에게 사명감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분의 철학에 따라 영어시간이 정말 많았다. 일주일에 영어강독·영작문·영어회화가 각각3시간으로 총 9시간이 영어수업이었다. 2학년 때는 ‘민주정부론’ 등을 미국인 교수가 영어로 가르쳤다.

제1외국어로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했으니 일주일에 외국어가 12시간이나 됐다.

영어 다음으로 백 총장이 강조한 것이 인간관계였다. 해방 직후 좌우가 격돌하니 어린 학생들까지 개입해 이리저리 몰려 다니면서 싸움질을 할 때였다. 백 총장은 “1학년 때 4학년생까지 사귀고, 4학년 때 1학년생까지 사귀면 대학 때 많은 사람을 평생 벗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가르쳤다.

노천극장에서는 일주일에 세 차례 예배를 봤다. 백 총장은 외국 유명 인사를 자주 초청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사람은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 세계적인 신학자 에밀 브루너 등이다. 그동안 일본 문화 속에 살던 우리에게 세계를 향한 눈을 뜨게 해준 것이다. 백 총장이 직접 통역했다.

석학들의 영어보다 백 총장의 통역이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좋은 통역을 하려면 영어만 잘해서는 안 되고, 신학·철학·문학·역사 등 다방면에 박식해야 한다는 것을 백 총장을 통해 배웠다.

백 총장은 25년 예일대 철학박사를 시작으로 파크대 신학박사, 스프링필드대 인문학박사, 디포대 법학박사, 그리고 연세대 문학박사 등 5개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35년에는 영국 왕립역사학회 회원이 됐다.

당시는 6월에 학기가 시작됐다. 50년 4월 입학시험이 있었는데 문교부에서 서울대를 1차, 연희대와 고려대를 2차로 발표했다. 문교부 장관과 격돌한 백 총장은 조정이 되지 않자 자의로 연희대를 특차로 발표하고 제일 먼저 학생을 뽑았다.

결국 연희대 특차, 서울대 1차, 고려대 2차가 된 셈이었다. 한동안 시끄럽다가 백 총장이 문교부 장관이 되면서 잠잠해졌다.

한국전쟁 후 연세대 총장으로 복귀한 백 총장은 4·19 이후 참의원 의장까지 지냈으나 5·16으로 의회가 해산되는 바람에 조용한 여생을 보내야 했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나는 2~3년간 후배들과 함께 백 총장 부부에게 생신파티를 열어드렸다. 내가 “연희대 시절 영어와 인간관계·세계관에 대해 가르쳐주신 덕분에 오늘이 있습니다”고 했더니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다.

85년 90세로 타계하셨지만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평생의 은사’이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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