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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0.05.28 조회수 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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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내가 만난 박정희(상)

[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116. 내가 만난 박정희(상)

[중앙일보] 입력 2009.02.05 01:07 / 수정 2009.02.05 01:15

‘3·15 부정선거 책임 지고 사임하라’
상관 송요찬 참모총장에 편지 보내


5·16 직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左)이 잠시 내각수반을 겸직할 때 필자(中)가 의전비서관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18년간 한국을 통치하면서 경제 개발을 주도한 지도자였으며 개인적으로는 감히 범접하기 힘든 상관이었다. 그러나 청년장교 시절부터 20년 넘게 가까이서 본 그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몇 마디 쓰려고 한다.

박정희 준장을 처음 만난 것은 미국 보병학교 훈련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4년 봄이었다. 육군 대위로서 강원도 화천의 2군단장 전속부관을 하고 있을 때 박정희 준장이 2군단 포병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첫 인상은 ‘작은 체구지만 꼿꼿하고 과묵하면서 무게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초급 장교에게도 다정하게 대해준 것을 기억한다.

두 번째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1군 비서실에 있을 때 박정희 장군이 소장으로 진급해 1군 참모장으로 부임했다. 내 직속 상관이 된 것이다. 국방부에서 계급장을 달아줄 테니 진급 장군들은 상경하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그런 일로 오라 가라 한다”며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참모장 시절 미군과 작전회의를 할 때 영어를 잘하는 장교가 필요했기 때문에 내가 많이 도와드렸다. 가끔 전 지휘관 앞에서 브리핑하다가 송요찬 사령관에게 질타 받을 때면 박 장군이 나를 불러 위로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곤 했다.

그 뒤 나는 송요찬 참모총장을 따라 육군본부로 옮겼고, 박 장군도 서울의 6관구 사령관으로 전출했다. 59년 쌍십절에 송 총장을 따라 대만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사절단에 박정희 소장과 한신·임충식·김상목·안춘생 장군도 포함돼 있었다.

4·19가 일어나자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이었던 박 장군이 부산지구 계엄사령관이 됐다. 한번은 ‘박 장군이 폭도들과 같이 만세 삼창을 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박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 송요찬 총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금 4·19를 수습했다고 영웅 기분을 내고 있겠지만 인기는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군의 총책임자로서 3·15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빨리 사임하라’는 내용이었다. 송 총장은 노발대발했다. 이 편지를 당시 김정렬 국방장관에게만 보여줬다. 나중에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김정렬 대사가 “그 편지는 나와 당신만 아는 거지?”하고 말하곤 했다.

장면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 장군이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 됐다. 그런데 육사 8기생의 하극상 사건이 일어나 김종필·석정선 등 16명이 모두 예편했고, 미8군 사령관의 강요로 박 장군도 대구 2군 부사령관으로 좌천됐다. 이 사건이 5·16의 밑바탕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5·16이 일어나기 얼마 전 육군의 작전연습 (CPX)이 있었다. 2군사령부에 갔는데 마침 최경록 사령관이 미국에 있을 때여서 박정희 부사령관이 총지휘했다. 그때 작전 계획이 5·16 당시 그대로 사용됐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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