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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내가 만난 사마란치 (하)

[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119. 내가 만난 사마란치 (하)

[중앙일보] 입력 2009.02.10 00:58 / 수정 2009.02.10 01:13

88년 올림픽 이후에도 수시로 방한
월드컵·아시안게임 유치 때도 도움

사마란치(右)가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황영조에게 기념패를 주고 있다.


 사마란치는 담배를 전혀 피지 않는다. 술도 거의 하지 않고, 식사 때 와인 한 잔 정도가 전부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9시에는 침실에 든다. 아침에는 꼭 한 시간 정도 운동을 빼놓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일요일에는 반드시 미사에 참석한다. 그는 절제를 아는 사람이다.

세계의 지도자 중에서 사마란치만큼 한국을 많이 찾은 사람은 없다. 물론 초반에는 서울올림픽 때문에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올림픽 이후에도 그는 진정 한국을 사랑하는 친한파였다. 2002년 월드컵 유치로 고전하고 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아벨란제 FIFA 회장과 공동개최를 협의해 줬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치 때도 직접 한국까지 와서 도와줬다.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가 주관하는 일에 IOC 위원장이 월권을 한다’는 얘기까지 들으면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것도 사마란치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94년 파리 총회에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을 결정할 때 태권도를 직권상정한 것은 사마란치의 작품이다.

그 는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의 평화를 위해서도 애를 썼다. 서울 올림픽 전에 네 차례의 남북 체육회담을 주선했고, 시드니 올림픽의 남북 동시입장도 적극 지원해 줬다. 한국이 서울 올림픽 이후 국제 대회나 국제 회의 유치전에서 승승장구한 것도 사마란치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마란치와 나는 친형제 이상으로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였다. 그는 늘 “김 부위원장이 없으면 일이 안된다”고 말하곤 했다.

흔히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마란치는 스포츠 발전을 위해 정치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자신은 스포츠 지도자지만 만나는 사람의 70% 이상이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이고, 그가 하는 일의 70% 이상이 정치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나 는 사마란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이상을 위해서 자기의 인생을 바치는 것 자체가 진정한 인생의 멋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도 나처럼 급료를 받지 않았다. 자신을 ‘자원봉사자’라고 했다. 사마란치는 한국이 정치적으로 격동기에 있을 때는 항상 나에게 안부 확인 전화를 하거나 전보를 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나의 복권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가장 먼저 축하전화를 한 사람도 사마란치였고,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까지 찾아와 축하를 해주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역시 IOC 권좌에 대한 지나친 욕심으로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그러한 행동이 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로 이어져 자신도 타격을 받았고, 많은 IOC 위원이 희생됐다.

올해 89세가 된 사마란치는 여전히 IOC의 명예위원장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굴곡이 있긴 했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사마란치의 이미지는 ‘고고한 학’이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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