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김운용닷컴

English


연재 자료실

> 데이터룸 > 연재 자료실

작성일 17.01.23 조회수 484
파일첨부
제목
제13장 올림픽 운동과 한국 체육이 나아갈 길(81회)


              


한국 스포츠의 과제-1 (81)


   - 제13장- [부록]올림픽 운동과 한국 체육이 나아갈 길 

 

 


 




1. 21세기 스포츠 발달과 올림픽의 변천

동양과 서양은 스포츠에 관한 인식이 크게 다르다. 과거 동양에서는 스포츠란 힘이 세고 싸움 잘하고 공부는 좀 못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서양에서는 돈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포츠는 21세기에 가장 전진적인 사회 운동으로 발전해 여유 있는 생활과 평화로운 사회를 구현함에 있어서 각광을 받음과 동시에 대중화를 거쳐서 지금은 누구나 하고 보고 즐기는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스포츠의 발전은 올림픽의 발전과 같은 맥락에서 관찰된다. 한때는 스포츠에 정치가 관여한 적도 있었다. 이것은 올림픽이 지구촌 전체에 걸쳐서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나치와 소련 등은 전체주의를 선전하기 위해서 올림픽을 이용했으며, 인종 문제와 테러 등도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인종적인 문제 등이 올림픽의 숭고한 이상을 훼손시킨 적도 있었다. 또 보이콧도 88서울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12년간이나 계속 되었다.

그러나 올림픽은 중단 없이 발전하여 각국이 이제는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하여 엄청난 경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올림픽이 가져다주는 메시지와 국민의 프라이드, 정치와 경제발전 등에 주는 효과가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부의 어마어마한 투자 없이는 올림픽 유치도불가하고 금메달 따기도 힘들다. 상위 10위 내 금메달 강국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한국, 일본 등을 말한다.
올림픽은 비즈니스 면에서도 성공하고 있다.

1억 달러 이상을 제공하는 올림픽 탑스폰서(Top Sponsor)를 비롯하여 라이선스와 공식 공급 업체 등 올림픽을 활용한 수익사업이 있다. TV 방송권료도 올림픽 사업을 위한 중요한 수입원 중의 하나다. 4년 주기에 10억 달러다. 월드컵축구 방영권이 최근 일본에서 밝힌 자료에 의하면 63억 엔이라고 하는데 올림픽은 한 번에 미국 NBC 1개사로부터 10억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거액을 받는다. 그리고 몇 개 올림픽을 한 번에 계약한다.

20세기 올림픽은 상업화와 대중화를 거쳐서 성공적인 발전을 해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제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20세기 말 올림픽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과도한 대중화, 프로화와 상업주의로부터 초래되었다. 선수들은 약물을 복용하여서라도 사회적인 영광과 돈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지금 세계스포츠계 특히 IOC에게는 도핑 문제가 제일 크다. 소치, 런던, 베이징 올림픽까지 들춰내고 있다.

또한 지나친 프로리즘에 의해 출전을 보이콧하는 선수들도 있다. 드림팀의 선수들은 스포츠 정신보다도 돈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고, 다른 선수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올림픽에는 프로야구, 프로축구, 아이스하카, 골프 등 수천만불의 수입을 올리는 선수와 순수한 아마추어 선수가 섞인다.

환경 문제를 포함한 윤리 문제도 거론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떠오름에 따라서 20세기 올림픽의 과제였던 청소년 교육과 보다 여유 있는 생활을 추구하며, 평화에 공헌한다는 올림픽 정신이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올림픽 탄생도 그런 맥락에서다.

올림픽의 이상을 21세기에는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또한 어떻게 증진시킬 것인가 등이 앞으로 IOC가 추구하면서 나아가야할 과제들이라고 생각한다.
 
2. 한국 스포츠의 현상

우리나라의 스포츠는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여자 선수들이 남자들보다 나은 성적을 냈으며, 일본에게는 덜 지고, 북한에게는 꼭 이겨야만 한다는 것이 지상 과제였다.

올림픽에서 상위의 성적을 낸다는 것은 예상할 수도 없었고, 금메달은 올림픽 참가 30년 후에나 겨우 한 개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실제로 1948년 KOC가 생기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가 처음 금메달을 땄다.


2000년 태능선수촌에서 선수들과 아침조깅, 왼쪽부터 이승완, 김봉섭 사무총장, 필자, 이상철 부회장, 장창선 선수촌장.jpg
▲ 2000년 태능선수촌에서 선수들과 아침조깅
이승완 태권도부회장, 김봉섭 사무총장, 필자, 이상철 부회장, 장창선 선수촌장

그러나 1980년 이후 한국 스포츠는 스포츠 강국답게 동·하계 올림픽 톱10에 들어간다. 시드니에서부터 태권도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가라테도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다.

한국 스포츠가 200여 개국이 넘는 IOC 회원국 중에서 동·하계를 막론하고 10위권 이내의 경기력을 갖게 된 것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 올림픽은 국민의 프라이드 향상과 단결을 가져왔으며 정치, 경제, 학술, 문화, 방송, 과학, 통신, 의학, 그리고 미디어 등 모든 분야에서 성취를 했고, 세계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분단된 국가에서 열린 올림픽이었지만, 현재도 성공한 올림픽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의 경기력은 연간 4천억원이라는 대한체육회에 대한 보조 덕이 크다.

20세기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시드니 올림픽은 여러 가지 큰 족적을 남고 한국 입장에서 보면 3가지 특기할 사항을 거론할 수가 있다.

우선 남북 동시 입장 행진은 50년 만에 처음 이루어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볼 수도 있지만 수많은 협의와 시행 과정을 거쳐서 성취한 것이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한반도가 그려진 기를 손에 잡은 역사적인 이 행진을 지구촌의 가족이 TV를 통해서 시청하였고, 각국의 대통령, 수상과 스포츠계의 지도자 등을 시작으로 12만이 넘는 관중의 뜨거운 기립 박수를 받았던 것이다. 경기장에서도 상호 응원을 했다.

10개월 후에 개최된 서울 ASEM 회의에서도 남북의 동시 입장 행진에 관한 화제로 꽃을 피웠던 점들을 종합해 보면 그 의미가 어느 정도로 중대했었던가를 가늠할 수가 있다.
두 번째는 세계태권도연맹 창설 27년 만에 태권도가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된 것이다. 일부 미디어에서는 별로 재미가 없다고 지적했지만 룰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개발을 하며, 세계가 이것을 받아들이면서 발전해 가는 것이다. 더구나 태권도는 무도를 스포츠화 한 것으로 굉장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룰은 갑자기 바뀌어서는 안 된다. 육상과 수영 종목도 룰의 변화를 볼 수 있으며, 유도도 빨간색과 파란색의 유니폼으로 바꾸었고, 탁구도 TV를 의식해서 볼의 색상을 컬러로 바꾸었다. 스포츠의 보급과 발전에 따라 룰도 끊임없이 바뀌어가고 있다.

배구도 3회였던 토스를 4회로 늘였으며, 농구도 3점 슛 제도를 도입하는 등 룰은 변모해 왔다. 많은 연구와 실험을 거쳐서 정식으로 룰이 결정되는 것이다. 동계올림픽은 금메달 30개였던 것이 이제는 102개를 넘는다.

태권도는 무도로부터 시작되어 스포츠로 발전한 종목이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권도는 스웨덴 국왕, 키신저 전 미(美) 국무장관, 사마란치 IOC 위원장, 스페인 왕, 오스트리아 수상과 스포츠계의 지도자들이 참관했고, 질서 정연하며 성대하게 경기를 가져 정식 종목으로의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마란치 IOC위원장도 만족했다. 기술도 룰도 다양화하고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하여 지속적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있다.

세 번째는 금메달 8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0개를 획득한 성과뿐 아니라 하키, 여자 핸드볼, 여자 배구, 여자 농구, 야구 등에서 세계의 강자들과 대등하게 싸웠다. 체격 조건이 뒤떨어지지만 우리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싸웠다.



 



http://www.graphys.co.kr/bin/bbs/bbs.htm?table=blog_two&st=view&id=40§er=D&menu=on&sub_menu_open=5ok
이전글 제13장 올림픽 운동과 한국 체육이 나아갈 길(82회)
다음글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80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