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김운용닷컴

English


연재 자료실

> 데이터룸 > 연재 자료실

작성일 17.01.11 조회수 274
파일첨부
제목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76회)


              


힘이 되어준 사람들-1 (76회)


   -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나는 한국을 움직이고 있는 몇 명의 경제인들과 특별한 친교를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삼성그룹 회장인 이건희 씨다. 그는 대한레슬링협회장으로서 아시아 경기대회와 서울 올림픽에서 많은 공헌을 했다. 나는 재벌 총수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만 일부의 사람은 극단적으로 독선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타입으로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단번에 그의 팬이 되었다. 정말로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회장 자신도 고교(서울사대부속) 시절에 레슬링 선수였다. 스포츠가 좋아서 그런지 그는 ’88년 서울 올림픽 기간 중에는 경기장에서 살았고 회사의 일은 늦은 밤에 챙길 정도로 모든 정열을 쏟았으며, 선수와 임원들에게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세계승마대회를 삼성그룹의 계열 기업에서 후원을 하는 등 국제 스포츠계에서도 그 지명도는 알려져 있었다.


1996년 이건희 IOC위원 선임 축하모임에서.jpg
            ▲ 1996년 이건희 IOC위원 선임 축하모임에서

내가 그런 이 회장과 인연이 된 것은 만날 때마다 세계화에 있어서 누구보다 앞장을 선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계화(Globalization)’라고 하는 말이 아직 한국인의 귀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 그는 상당히 높은 식견으로 세계 각국의 일류들과 경쟁을 해야만 한다고 기회만 있으면 말했다. 삼성그룹의 모토가 ⌜세계 일류⌟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의 국제적 감각, 세계관은 나의 의견과 일치했다. 세계를 보는 눈이 같았던 것이다. 그것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었으며, 함께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 번은 그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아느냐고 한 적도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빈번하게 만나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이 회장이 삼성그룹의 대대적인 경영 혁신과 의식 개혁을 단행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이 회장이라는 인물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삼성은 경영 혁신을 통해서 한국에서 1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 우승을 달성하는 초일류 기업이 되려고 하는 목표를 걸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하여 왔다. '국내에서 1등을 하기 위해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해도 의미가 없다'라고 하는 이 회장의 담화 보도를 신문 기사를 통해서 읽으며, 세계적 수준을 추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의 자세를 보고 나 역시 공감을 했던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다음은 노태우 전(前) 대통령과 1984년 LA 올림픽 참관을 위해 미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다음 올림픽을 4년 후에 서울에서 조직해야할 우리는 배워야할 입장이었고 아무한테나 웃으면서 머리를 숙여야 할 때다. 당시 우리나라와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과 동구권 나라들은 전혀 접촉이 없었다. LA에서 노태우 당시 올림픽조직위원장은 LA에 와 있는 소련의 가장 고위 관료(차관)와 접촉했다. 물론 그들과의 접촉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KAL기 격추사건 직후였고, 접촉 자체가 민감한 시기였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때, 좌로부터 이병기보좌관, 김운용부위원장 ,노태우위원장, 전상진대사.jpg
           ▲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 
           좌로부터 이병기보좌관, 김운용부위원장 ,노태우위원장, 전상진대사

노 위원장이 서울 올림픽과 관련해서 외국 기자들과 기자 회견을 갖게 되었다. 어느 기자가 질문했다. “KAL기 격추사건에도 불구하고 소련 대표단을 서울 올림픽에 참가시키겠습니까?”

그 순간 장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혹시라도 소련을 비난하는 내용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동서 융합의 제전인 서울 올림픽이 노 위원장의 발언 여하에 따라서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었는데 그는 단호히 대답했다. “KAL기 격추사건은 우리에게는 지극히 불행한 사건입니다. 올림픽은 인류의 커다란 융화의 제전으로서 올림픽 헌장에 나와 있듯이 올림픽은 개최되어야만 합니다.”

회담 후 소련의 차관은 본국에 가서 보고하겠다고 했다. 이때 소련의 보이콧으로, 로스앤젤레스에 소련선수단은 오지 않았고 시소예프(Syssoyev) 차관과 스미르노프(Smirnov) IOC위원, 티토프(Titov) 국제체조연맹회장만 와있었다.

그가 소련을 맹렬히 비난할 것이라고 기대한 한국인 기자들은 의외의 발언을 듣고서 자기들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발언을 듣고 난 후 나는 노태우 위원장의 일면을 다시 한 번 볼 수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 노련함과 무난함이었다. 같은 일을 함께 하던 기간 중에도 끝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뜻을 같이했다.




 



http://www.graphys.co.kr/bin/bbs/bbs.htm?table=blog_two&st=view&id=40§er=D&menu=on&sub_menu_open=5ok
이전글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77회)
다음글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75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