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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1.13 조회수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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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77회)


              


힘이 되어준 사람들-2 (77회)


   -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전두환 전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과의 관계는 ‘흐린 후에 맑음’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청와대 근무 시절에는 자주 만나는 관계였는데 1980년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나는 그의 부하들에 의해서 지독한 고생을 했다.

대한태권도협회 회장과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직으로부터 추방당할 뻔 하였으며, 내가 IOC 위원이 될 때에는 좀처럼 동의를 해 주지 않아서 결국 사마란치 위원장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동의를 받아냈던 경험이 있었다. 사마란치 위원장의 말은 그가 그의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었지만 88 올림픽을 치러야 할 입장이기에 동의를 얻는 것이 나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막판에는 IOC 위원 없이 올림픽 치뤄보라는 것이 IOC 태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은 대안이 없다며 일단 동의한 후에는 상당히 호쾌하였다. 그는 호걸 타입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다. 자신이 일단 이해를 하면 그 이후로는 신속한 결단력을 보였다.  그리고 내가 올림픽 준비를 하는 데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서울올림픽은 노태우, 박세직 등 군인 출신이 위원장이었고 내가 부위원장이었지만 IOC조정위원회도 없어 IOC위원인 내가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과감하게 결정하고 처리했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전 대통령의 이와 같은 성격이 서울 올림픽 준비 작업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고 그 후에도 말하곤 했다.

하지만 거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소련은 자기들의 배로 와서 인천항에 정박하면서 선수와 추가임원들(Extra Officials)의 휴양 및 컨디션 조절을 하고 싶다며 협력을 요청했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개최라 사실은 어떤 일이든 전례라는 것은 없었다. 소련의 선박을 인천항에 정박시킨다고 하는 신청도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전례가 없었기에 정박을 시키는 것도 할 수 없다.”하는 우리 결정에 소련은 “안 되면 불참한다”고 하면서 응수가 계속되었다.


제1회 월드게임(미국)에서 돌아와 청와대로 전두환 대통령 예방.jpg

▲ 1981년 제1회 월드게임(미국)서 돌아와 청와대로 전두환 대통령 예방

협의가 길어지자 도쿄에서 소련 측과 비밀 협의가 지속되었다. 소련은 강경하게 “만에 하나 배가 입항할 수 없다면 참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반복하였다. 주최국인 한국 측으로서도 이 이상 회답을 연기할 수가 없었다. 소련 등 공산국가가 불참하면 서울올림픽은 실패작이 되고 가치가 반감될 것이었다.

나는 IOC위원과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의 자격으로 직접 전두환 대통령을 방문했다. 모두들 무서워서 전 대통령에게 보고를 안하려고 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이와 같은 일들은 이미 멜버른,  몬트리올, LA 올림픽 (불참) 등에서도 전례가 있었던 것들입니다. 또한 소련은 스파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습니다. 소련 등이 스파이 활동을 하려고 한다면 굳이 인천항에 배를 정박시키지 않아도 인공위성을 사용해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들은 선수는 선수촌에 입촌하고 IOC 헌장을 존중하며, 우리나라의 법률을 지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우리나라의 법을 준수하고, IOC 헌장을 지킨다. 정말로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면 허가하지”라고 전(全) 대통령은 즉시 관계 부서에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

미리 12월 중순에 나에게 통보해 준대로 1988년 1월 10일, 소련은 서울 올림픽 참가를 공식 발표했다. 이와 같이 그는 자기가 일단 납득을 하면 그 이상은 기분 좋게 처리해 주는 사람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2002년 한일 공동 주최의 월드컵 축구와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는 김영삼 전(前)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과 성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으며 솔직하다는 게 첫 인상에서 느끼는 생각이었다.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유치 때 김 전 대통령은 “사실 부산에는 별로 해준 게 없다. 우리나라 2대 도시이면서 최대 항구도시인데 아시아 경기대회를 유치하면 어떻겠느냐”고 강한 유치 의사를 보였다. 이때 대만 카오슝이 대만의 외환 보유고를 자랑하면서 좋은 제안을 많이 했다.


청와대에서 IOC 사마란치 위원장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올림픽훈장 금장 전수.jpg

▲ 청와대에서 IOC 사마란치 위원장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올림픽훈장 금장 전수

그리고 월드컵 축구 유치 때 일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한국이 유치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달라”고 하자 사마란치는 “아벨란제(Havelange)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공동 개최는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으며 아벨란제와 합의가 이루어져 공동 개최가 확정되자 즉시 내게 알려 줬다. 그래서 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밤에 보고한 일이 있었다. 양 대회 유치에 김 전 대통령은 많은 노력을 했으며 특히 월드컵 축구 유치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애틀랜타 올림픽이 끝나고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선수단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서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리스트인 방수현 선수에게 김 전 대통령은 “훈련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느냐? 뭐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보라”고 물었고, 방 선수는 “배드민턴 연습장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지어주지” 하고 “김 회장, 예산이 얼마나 들지요?” 하시기에 나는 이때다 하고 “배드민턴뿐만 아니고 핸드볼 연습장도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250억 원 정도 듭니다”라고 했다. 그 후 배드민턴 핸드볼 전용 훈련장인 오륜관을 150억 원을 들여 건립해서 핸드볼은 국제대회까지 열었다.

내친 김에 나는 태릉야외빙상경기장시설을 뜯어 강원도 춘천에 기증하고 그 자리에 250억을 들여 지금의 400m 트랙을 갖춘 실내 빙상경기장을 지었다. 그리고 대표선수 연습시간을 빼고는 시민에게 연중 공개했다. 겨울 종목은 시설 없이 안 되는데 10여년 걸려 빙속, 피겨스케이트 등에서 김연아, 이상화 등을 배출하고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건립 직후 스프린트 세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를 열었는데 칭콴타(Cingquanta) 국제빙상연맹회장이 와서 올림픽급 실내빙상경기장을 가진 나라는 한국올림픽위원회(KOC)밖에 없다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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