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김운용닷컴

English


연재 자료실

> 데이터룸 > 연재 자료실

작성일 17.01.17 조회수 423
파일첨부
제목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78회)


              


힘이 되어준 사람들-3 (78회)


   -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1964년 미국에서 부인 박영옥 여사와 함께 하버드대학에 왔을 때 동행하였다. 그는 그 당시 한일회담 합의 후의 국내 소요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국에 나왔고, 학자, 상․하원 의원, 경제인, 문화인들과의 교류, 대학 방문, 산업 시찰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의 국제세미나에 참가했다.

그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스포츠 등의 다방면에 걸쳐서 국제적인 식견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이상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군인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그런 색채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그로부터 받은 인상 중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은 보스턴에서 행해진 라이샤워 교수와의 대화 내용이었다.




선수촌을 방문한 김종필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jpg

▲ 선수촌을 방문한 김종필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정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라이샤워 교수가 물었다.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정치는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당시 정치적인 역경을 ‘정치는 인내’라고 하는 말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다고 본다.

그때 키신저와 만났고 그 후 키신저는 닉슨 대통령 밑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 국무장관이 되었고 김종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국무총리가 되었다. 한미 관계 증진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박세직 올림픽조직위원장

박세직 올림픽조직위원장도 올림픽이 인연이 되어 만났던 사람이다. 군인 출신이라서 조금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던 점을 빼고는 인간적인 스케일이 크고, 공부도 많이 했으며,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면서 순수한 사람이기도 했다. 영어도 잘 했다. 인간적으로 성실하고 근면한 그는 사람들의 말을 아주 잘 들어주는 타입이었다. 그는 어정쩡하지 않았고, 대단한 노력가였다. 박 위원장은 노태우 위원장 밑에서 나와 함께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다가 노 위원장이 정당대표로 간 얼마 후에 위원장이 되었다.

박세직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과.jpg

▲ 박세직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과

박 위원장은 IOC 총회에서 연설하는 것이 결정되자 그 준비를 위해 일주일을 준비했다. 철야를 하면서 원고를 쓰다가 다시 쓰고 하면서 원문을 순차적으로 암기했다. 연설은 원고 없이 하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그는 항상 원고를 통째로 암기했다. 가끔은 문장 하나를 통째로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은 잘못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그렇다고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 한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남겨진 인생의 시간을 최대한 유용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하면서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한 사람이다. 서울올림픽 성공에 큰 공헌을 했다.
나와 함께 이익금 3천억원으로 한국체육진흥공단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공단에서 연간 수조원씩 체육진흥 예산을 지원하게 되었다.

김집 전 체육부 장관

나는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직을 9년 4개월 간 수행했다. 비상근, 무보수, 자원봉사직이었지만 책임은 무거웠다. 이 자리는 의사이며 체육부장관을 역임한 김집 씨가 한국 체육 발전을 위해서는 내가 적임자라고 적극 추천해 준 덕분이라고 본다.

의사이면서 전 생애를 체육과 청년 운동을 위해서 공헌한 그는 “한국 체육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힘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한 번쯤은 맡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나를 강력하게 추천해 주었다.

추대위원회를 만들어 선거 운동을 시작했고, 다른 경기 단체 회장들에게도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 열심히 뛰었다.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선거 기간 중에 외국에 나가면 곤란하다”라고 김 집 씨가 말할 정도였다.

1989년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있었고, 몇몇 지인들이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나를 추천해 선거 운동을 했지만, 그 당시 나는 외국에 나가 있었다. 그때는 김 집 씨가 내가 없으니 다른 사람을 추천하여 당선시킨 바가 있었다. 그는 내가 IOC 일정이 있어도 이번만큼은 외유하지 말기를 신신당부했다.

그 후 대한체육회 고문을 맡아 자주 만나 여러 가지 협의도 하고 도와도 주며 나와는 아주 절친한 관계에 있었다. 그는 적극적인 사고를 갖고 있으며, 옆을 보지 않고 달려온 사람이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서울올림픽 유치 때도 그 나름대로 활동했고 그 후에는 한국선수단장도 지냈다.





 



http://www.graphys.co.kr/bin/bbs/bbs.htm?table=blog_two&st=view&id=40§er=D&menu=on&sub_menu_open=5ok
이전글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79회)
다음글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7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