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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1.18 조회수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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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79회)


              


힘이 되어준 사람들-4 (79회)


   - 제12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

 

 


 


 

민관식 전 국회부의장, 대한체육회장

민관식 씨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국회부의장, 문교부장관, 평통 부의장,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 약제사회장, 대한체육회장 등 그가 맡지 않은 직책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후에 대한체육회 명예회장과 마약퇴치 본부장도 역임했다.

이와 같이 많은 직책을 맡으면서 살아왔지만 그는 체육인이었던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특히 대한체육회 회장으로서 6년간 재직 중에 오늘날 한국 체육의 메카인 태릉선수촌을 건설하는 데 기초를 다졌다.

그는 나이가 든 후에 더욱 왕성한 노익장을 과시해 매일처럼 운동을 통해서 체력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한시도 앉아서 지내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솔선해서 앞장서고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다. 그는 돈과 명예는 잃을 수도 있지만 건강은 한 번 잃으면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명예처럼 되찾을 수도 없다는 지론을 가진 분이다.

그의 집에는 그 동안 체육 활동을 통해서 수집한 자료와 기념품 등을 정리해 둔 체육박물관이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체육에 대한 철학이 전부 전시되어 있다. 그는 주위의 사람들과 사회, 그리고 체육을 위해서 노력한 공로로 IOC에 올림픽 오더(Olympic order)를 내가 IOC 상훈위원시절 추천한 바 있다.



블레터 FIFA회장 방문 때 (왼쪽부터 박세직 월드컵위원장, 블레터, 필자, 민관식 회장, 오완근 부회장.jpg
          ▲ 블레터 FIFA회장 방문 때
       (박세직 한일월드컵조직위원장, 블레터, 필자, 민관식 회장, 오완근 부회장)

최호중 외교통상부 장관·통일부총리

최호중 외교통상부 장관은 나와 같이 욱구(旭丘, 경성아사히가오까)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던 사이로 같은 길을 걸어오면서 항상 얼굴을 대하며 지내온 친구다. 외무부장관을 거쳐 부총리까지 역임한 그는 무척이나 노력하는 친구였다. 욱구중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후 경동고등학교를 들어가서부터 나는 운동과 음악 등 이것저것을 다 해왔지만 그는 일편단심으로 한 가지 공부에 열중하였다. 우등생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부터 그는 무척이나 깔끔한 신사였다. 고교 졸업 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목표하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그는 6.25 전쟁 때는 육군통역장교로 복무했고 외교관 시험에 합격하여 외교관으로서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나는 전쟁 중이라서 고시는 보지 않았지만 결국 외교관이 되었고, 지금은 ‘스포츠 외교’를 하는 입장으로서 그와 같은 길을 걸어 왔다.

1981년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유치전 때는 주말레이시아 대사이던 그가 아프다는 하산 IOC위원을 바덴바덴까지 억지로 보낸 공도 있다. 또 외무차관보 때는 1978년 내가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에 아프리카 태권도연맹을 창설할 때 당시 돈으로 외무부 기금 5만불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진취적이다.

나는 그가 외무부장관 시절에 가끔씩 북방외교에 관해서 의논을 하였다. 지금과 같이 동구권 각국과 접촉이 되지 않던 시절이지만 나는 서울올림픽 책임자이며 IOC 위원이라는 특수한 신분이라 여기저기 다닐 수가 있어서 정보 수집도 가능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보고 느끼고 들은 경험들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가 외무부장관 시절에 내가 대통령 특사가 되어 동구권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계철 중고교동창, 미얀마 대사

중고교 동창인 이계철도 내가 잊을 수 없는 친구 중의 하나다. 욱구(旭丘) 중학교와 경동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그는 유도 선수였다. 스포츠를 경시하던 시절에도 유도 선수로 전국에서 우승까지 했다. 우등생으로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나중에는 미얀마 대사로 근무했는데 아웅산 폭파 사건으로 귀중한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이 친구는 스포츠를 즐기는 것도, 국제 감각도 나와 비슷했다. 서로가 상대방 집을 제 집 드나들듯이 할 정도로 가까웠던 사이였다. 정말로 어렵게 고생한 끝에 대사까지 되었던 그가 미얀마에 부임하여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중에 아웅산 폭파사건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는데,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그 친구의 사망이 나에게 주었던 충격은 지금도 내 몸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아,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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