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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1.25 조회수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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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올림픽 운동과 한국 체육이 나아갈 길(82회)


              


한국 스포츠의 과제-2 (82)


   - 제13장- [부록]올림픽 운동과 한국 체육이 나아갈 길 

 

 


 



3. 21세기 한국 스포츠가 가야 할 길

첫 번째는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이 균형 있게 발전하는 것이다. 스포츠는 대중화, 고령화 시대를 맞고 있다. 사회복지 수단으로서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대학 진학에 전념하고 있는 교육 시스템은 생활 체육의 중추 핵심인 학교 체육 발전에 방해가 되고 있는데, 생활 체육은 자연적으로 육성시켜야만 한다.

엘리트 체육은 생활 체육과 달라서 집중적이고 과학적인 트레이닝이 기본이 된다. 중국의 경우에는 인구 12억 중에 7억 인구가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올림픽 사이클 종목에서 메달을 딴 적이 한 번도 없다. 이것은 생활 체육의 활성화와 엘리트 체육의 발전과는 전혀 다르다는 극단적인 사례다.

60억 인구가 4년마다 대망의 올림픽에 출전하는데 3, 4개의 팀밖에 없는 나라의 선수가 결승이나 준결승에 진출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생활 체육이란 자기 몸에 맞는 그리고 좋아하는 스포츠를 평상시 즐기면서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다. 상품을 주거나 이벤트를 개최하는 것이 생활 체육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다. 시설과 지도 그리고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것이 생활 체육 발전의 요지다.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우선 학교 체육의 발전이 급선무다.

스포츠는 20세기에 들어서 참신한 사회운동이고, 올림픽 운동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진적이고 평화적인 운동으로 발전해 왔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 백작은 19세기 독불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한 원인을 찾던 중에 그 중요 요소로서 스포츠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당시 독일은 이미 스포츠를 통한 심신 단련으로 강건한 국력을 배양하고 있었고, 그 후에 그것이 세계 대전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치즘의 대두로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어 버렸지만 전 국민이 하면 된다는 정신적인 일체감을 준 요인이 되었다.

영국의 경우 전통적인 럭비를 교과과정에 넣고 학생들에게 전인 교육을 시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럭비를 통해서 학생들은 강인한 심신의 단련과 힘 있는 팀워크라고 하는 규칙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리고 패배를 정확히 인정하는 것을 배우며 신사도를 키워나간다.

한편 프랑스의 국민, 특히 학생들은 스포츠나 레크리에이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보기에는 화려하게 보여도 학업 의욕도 어중간하고 도태되는 악순환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에 쿠베르탱은 놀랐던 것이다. 그래서 쿠베르탱은 스포츠를 통해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 허약하고 우울증에 빠진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이와 같은 확신에 의해서 그는 올림픽이라고 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유산을 구축했던 것이다.

올림피즘(Olympism)은 스포츠, 문화, 교육의 3가지를 조화롭게 혼합한 것으로 이 3개가 종합적으로 만나는 것이 본래의 올림픽이다. 보다 우의를 다지고, 보다 풍요롭고, 보다 평화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한 운동인 것이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민족, 종교, 인종, 언어의 구별 없이 하나의 장소에 모여서 우정과 단결, 전진을 다짐하는 장소, 그것이 진정한 올림픽이고 우리가 영원히 추구해야 할 올림픽 운동인 것이다.
 
 
2000년시드니올림픽 KOC리셉션,  한국선수들, 이건희위원 내외와 필자 내외.jpg
▲ 2000년시드니올림픽 KOC리셉션
한국선수들, 이건희위원 내외와 필자 내외


1912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는 스포츠 경기 이외에도 여러 가지 문화 행사가 거행되었다. 각국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올림픽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승패를 가름하는 경기대회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같은 규칙, 같은 조건 하에서 자기들이 지금까지 쌓아 왔던 실력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발휘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우정을 쌓아 가는 올림픽이 세계인들에게 활짝 열려져 있다는 점을 경험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더욱 우의적이고, 보다 풍요롭고, 보다 평화적인 운동으로 발전한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는 황금시기를 맞았다. 그러나 황금기라고 해도 그것은 단지 출발점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올림픽이 사회적인 모든 문제까지 확대되어 상업주의, 프로 스포츠, 환경보호 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계가 주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우리나라의 스포츠도 그 나름의 변화와 변천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서양인이 자기들의 신체에 맞춰서 개발한 것을 도입해 답습하고, 일제시대의 변천을 거치고, 해방 후에는 각종 스포츠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세계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지만 1970년까지도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경제력은 없었고, 얼마간 힘이 생긴다면 아시아 경기대회 개최를 바라는 것이 하나의 희망처럼 보였다. 아시아 경기대회를 한 번 유치했다가 국가적인 재정난으로 반납한 경험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우리를 위로해 준 것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그리고 여자배구가 3위를 해 단체종목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딴 것이었다. 점차적으로 발전하고 있던 한국 체육은 경제 발전을 기반으로 1986년 아시안게임을 서울에 유치하는 데 성공하였고 비약적인 발전의 길을 열었다.

이 대회에서는 중국과 금메달 획득 수를 마지막까지 경쟁하며, 겨우 한 개 차로 2위가 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 이후에 세계 속에 한국인의 기개를 한층 더 높이게 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했고, 여기서 금메달 12개를 획득하여 세계 4위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한국 스포츠의 저력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어 금메달 12개로 세계 스포츠계에서도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음을 입증했다. 그 후에도 하계올림픽에서 상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또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우리 고유문화인 태권도가 올림픽정식종목이 되었다.

하계올림픽뿐만이 아니고, 동계올림픽에서도 우리는 약진을 계속했다.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로 마쳤던 것이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는 금 4개로 6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제 국가의 투자 없이 올림픽 유치도 힘들고 금메달 따기도 힘든 시대가 되었다. 상위 10개국의 면모를 보면 안다.

엘리트 체육은 조직, 정책, 재정, 훈련소, 꿈나무 및 코치 발굴 지원, 국내외 대회 경험, 의과학 접목 등을 경쟁기반으로 준비한다. 스포츠는  지역사회 건전화, 개인건강 활성화 등을 통한 고령화 시대 대비, 장애인 체육 등 국위선양, 사회 건전화, 소외계층 지원 등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아시아 올림픽 운동의 중심 국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발전으로 많은 나라를 원조하는 국가로 변모했다. 가장 빠르게 세계화를 달성한 스포츠계가 앞장을 섰고, 한국 경제의 급성장이 글자 그대로 한국을 세계 일류 국가로 발돋움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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