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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7.02.20 조회수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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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연재를 마치며(91회)


   - 제13장- 연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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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화살처럼 빨라 내가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40년이 넘었다. 50년 동안 나는 한국 체육의 세계화에 모든 정열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돌아보면 영광과 질곡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던 외교관의 길을 걷던 내가 6.25 사변으로 군인이 되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체육 행정가로 첫발을 디딘 것은 1971년. 우여곡절 속에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나는 한국 체육의 세계화라는 외길을 걸어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태권도의 국기화를 위해서 자력으로 국기원을 건립했고, 태권도를 세계인의 스포츠로 만들기 위해서 세계태권도연맹 창설과 각종 국제대회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시켜 나갔다.

태권도가 갖은 암투와 시기하는 유사 종목들의 모략을 딛고 서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되던 날, 나는 감격에 겨워 밤을 새웠다. 그리고 그 태권도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올림픽에 영원히 남을 길을 열었을 때에 내 가슴속에는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이 물결쳤다.

태권도에서부터 시작된 올림픽 운동은 태권도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스포츠 전체에 대한 세계화로 이어갔다. 평화 시 인류 최대의 제전인 88 서울 올림픽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 그리고 서울 올림픽의 근간이 되었던 1974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유치 과정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

1986년 IOC 위원으로 선출된 나는 최단기로 IOC 집행위원과 IOC 부위원장으로 고속 성장을 하면서 조국인 한국 스포츠의 발전과 올림픽 운동 증진에 내 모든 것을 바쳤다. 1986년에는 전 올림픽·비올림픽 종목들이 모인 국제연맹의 장인 GAISF 회장도 되었다.

’88서울 올림픽 이후 소강상태에 빠져 있던 한국 스포츠의 활로는 지속적인 세계화에 있었다. 1993년 대한체육회 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나는 민선, 비상근, 무보수, 자원봉사자로 그러면서도 책임은 더 무거운 가운데 정신없이 달렸다.

OCA 총회, 세계생활체육 총회, GAISF 총회, IOC 집행위원회와 IOC 총회, 그리고 부산 동아시아 경기대회, 전주·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강원·용평 동계아시아경기대회,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한일 공동주최의 월드컵 축구대회,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인천아시안게임, 평창동계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세계 스포츠 주요 행사를 한국에 유치하여 한국 체육을 아시아는 물론 세계 스포츠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한국 체육의 세계화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만을 한국에 유치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정작 세계가 인정하는 것은 경기력이다. 나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세계 10강의 반열에 서고, ’88서울 올림픽부터는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한국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100개 이상을 따냈으며 은·동을 합하여(단체 포함) 500개의 메달을 따냈다.

배드민턴, 핸드볼 전용 경기장인 오륜관을 건설하였고, 2000년 태릉에 국제 스케이트장을 전천후로 훈련하는 시설로 건립하여 오늘날의 빙상강국이 되는 길을 열었다. 선수들이 쾌적한 환경 속에서 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선수 숙소와 식당도 신축했다. 고지대 훈련을 위한 태백 선수분촌도 마련했고 하키 연습에 주력할 인조단지도 새로 포설했다. 뿐만 아니라 각 경기단체에 경기력 향상 지원금도 지출하였고, 선수 연금도 인상하였다.

이런 나의 노력이 밑거름이 되었는지 선수들은 열심히 경기력 향상에 주력하였으며 그 결과 한국은 ‘동·하계올림픽 연속 세계 10위권 이내 진입’이라는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힘을 더욱 보태 주기 위해서 5개 종목이 훈련할 수 있는 다목적 체육관인 개선관과 여자 전용 숙소도 건립하였다. 태권도 종주국의 뿌리가 된 국기원은 이미 1972년에 자력으로 건립하였다. 태권도는 1994년에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다.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이 있었다. 21세기 첫 올림픽이었던 만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대회였는데 우리나라 스포츠는 여기서 또 하나의 역사를 이룩해냈다. 남과 북이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하나가 되어 개막식과 폐회식에 동시 입장을 했던 것이다. 한반도기를 들고 남과 북이 함께 행진했던 모습은 단절과 분단의 벽을 넘어 평화통일에 대한 민족의 염원을 기리고, 아울러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뜨거운 감동, 그 자체였다. 또 시드니는 남북공동행진에 이어 우리 문화인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데뷔를 한 역사적인 올림픽이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IOC의 협조 아래 북한 측과 대화를 거듭하던 그때, 우리는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했으며 스포츠는 국민에게 또 다른 감동과 비전을 제시해 주었다.

유색인 최초로 100년 동안 백인의 아성으로 있던 IOC 위원장에 도전했을 때에도 나는 비록 여러 가지 방해공작으로 패배의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스포츠가 추구하는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를 펼쳤기에 후회는 없다.

스포츠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발고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키워준다. 스포츠가 주는 교육적 가치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올림픽, 그리고 스포츠는 인류의 문화를 풍요롭게 가꾸어 줄 뿐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 보다 평화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가장 전진적인 사회문화운동이며 복지 수단이다.

인류와 함께 영원히 같이 갈 올림픽! 나는 50여년 가까이 한국 체육사, 태권도 현대화, 그리고 올림픽의 역사와 함께 한 세월에 뿌듯한 긍지를 느낀다. 세계에 뛰어들어 세계에 도전했고 당당히 이겨 나갔던 그 때 그 순간들을 회상하면 감회가 새롭다.

그렇지만 내가 아직도 한국 체육 발전과 올림픽 운동을 위해서 할 일은 많다. 학교체육의 활성화, 엘리트체육에 대한 집중적 투자와 생활체육과의 균형적 발전, 고령화시대에 대비한 복지체육, 한국 체육이 진정한 세계 스포츠 선진국으로 자리 잡는 일을 지원하는 것 등 말이다.

이 회고록은 체육계 후배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재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과 자칫 잊고 본의 아니게 소홀히 지나친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나 자랑스러운 한국의 체육인과 독자님들의 깊은 양해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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